
마감 3일 전까지는 손이 안 가다가, 마감 전날 밤에 갑자기 머리가 맑아지는 경험. 저도 이런 적이 있습니다. 그래서 "그럼 마감을 앞당겨 스스로 속이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자연스럽게 듭니다. 이른바 '가짜 마감'입니다. 이 방법은 자기계발서마다 등장하는데, 정작 그 근거로 가장 많이 인용되던 연구에 2026년 큰 변화가 있었습니다. 그 이야기부터 정리하고, 그래도 쓸 만한 방법이 무엇인지 살펴봅니다.
'일은 주어진 시간만큼 늘어난다'
"일은 완료에 주어진 시간을 채울 때까지 늘어난다(Work expands so as to fill the time available for its completion)." 영국의 역사학자 노스코트 파킨슨이 1955년 11월 The Economist에 쓴 에세이에서 나온 말입니다. 흔히 '파킨슨의 법칙'으로 불리지만, 원래는 관료 조직이 일과 인원을 스스로 불려 가는 모습을 비꼰 풍자 글이었습니다. 실험으로 증명된 법칙이 아니라 날카로운 관찰에 가깝다는 점은 알고 쓰는 편이 좋습니다.
가장 유명한 근거, 철회되다
'스스로 정한 마감'의 근거로 20년 넘게 인용된 논문이 있습니다. 댄 애리얼리와 클라우스 베르텐브로흐가 2002년 Psychological Science에 발표한 「미루기, 마감, 그리고 수행」입니다. 학생 60명이 세 편의 글을 교정하는 실험에서, 일주일 간격으로 마감이 정해진 그룹이 오류를 가장 많이 찾았고, 3주 뒤 한 번에 내는 그룹이 가장 못했다는 결과로 유명했습니다.
그런데 리트랙션 워치의 보도에 따르면 이 논문은 2026년 9월 2일 학술지에서 철회됐습니다.
- 2026년 7월, 하인드먼(UT 댈러스)과 비신(NYU)이 교정 실험을 다시 해 봤지만, 마감 조건을 바꿔도 수행 지표에 거의 차이가 없었습니다. 일정한 간격의 마감이 특별히 효과적이지도 않았습니다.
- 연구 검증 블로그 Data Colada는 원자료에서 표본 크기에 비해 지나치게 큰 효과, 반복되는 값 같은 이상 패턴을 찾아냈습니다.
- 공저자 베르텐브로흐가 직접 철회를 요청했습니다.
즉 "고르게 쪼갠 외부 마감이 성과를 높인다"는 구체적인 주장은 지금으로선 근거로 쓰기 어렵습니다.
그럼 무엇이 남았나
같은 비신·하인드먼은 이전에 별도의 현장 실험도 했습니다(NBER 워킹페이퍼, 이후 Games and Economic Behavior 2020). 요약하면 이렇습니다.
- 학생들은 스스로 더 이른 마감을 정하는 '약속 장치'를 꽤 원했습니다. 미루는 자신을 어느 정도 안다는 뜻입니다.
- 하지만 그 마감이 완료율을 높이지는 않았고, 연구진은 오히려 해가 될 수도 있다고 봤습니다.
- 학생들은 마감을 정할 때 미래의 자기 통제력을 과신했습니다.
- 반복되는 과제를 여러 개 받았을 때는 오히려 스스로 조절을 잘했습니다.
'가짜 마감'이 마법은 아니라는 이야기입니다. 문제는 날짜 자체보다, 그 날짜를 정할 때 내가 나를 너무 낙관한다는 데 있습니다.
마감을 정하기 전에: 계획 오류부터
1994년 뷸러, 그리핀, 로스의 연구에서 심리학과 학생들에게 졸업 논문을 끝내는 데 며칠이 걸릴지 물었습니다. 평균 예상은 33.9일, '모든 게 최악일 때'의 예상도 48.6일이었습니다. 실제 평균은 55.5일. 자기 예상 안에 끝낸 학생은 약 30%뿐이었습니다. 이런 경향을 '계획 오류'라고 부릅니다.
미국 성격·사회심리학회(SPSP) 블로그의 계획 오류 글은 대책으로 세 가지를 꼽습니다. 비슷한 과거 작업이 실제로 얼마나 걸렸는지 비교하기, 작업을 작은 단계로 쪼개고 마감에서 거꾸로 계획하기, 그리고 구체적인 날짜와 시간에 구체적인 부분을 하겠다고 정하기입니다.
마지막 방법은 '실행 의도(implementation intention)'와 같은 원리입니다. "만약 상황 Y가 오면, 행동 Z를 한다"는 if-then 계획으로, 골위처와 시런(2006)의 메타분석은 목표 달성에 중간 이상 크기의 효과(Cohen's d = 0.65)를 보고했습니다.

연구를 반영한 '가짜 마감' 설계법
| 단계 | 할 일 | 예시 |
|---|---|---|
| 1. 과거 기록 보기 | 비슷한 일이 실제로 걸린 시간 확인 | "지난 보고서는 예상의 두 배 걸렸다" |
| 2. 잘게 쪼개기 | 한 단계가 하루 안에 끝나도록 | 자료 수집 / 목차 / 초안 / 다듬기 |
| 3. 단계별 마감 | 큰 마감 하나 대신 짧은 마감 여러 개 | 화요일 목차, 목요일 초안 |
| 4. if-then 붙이기 | 시간과 장소까지 정하기 | "출근해서 메일 열기 전, 초안 30분" |
| 5. 여유 남기기 | 진짜 마감 직전에 빈 날 두기 | 금요일 마감이면 목요일까지 |
반복 과제에서 자기 조절이 더 잘 됐다는 결과를 떠올리면, 큰일 하나를 '반복되는 작은 과제'처럼 보이게 만드는 3단계가 핵심입니다. 짧은 단위로 끊어 일하는 방식은 포모도로를 3주 써보고 알게 된 것에서 다룬 휴식 타이밍과 함께 쓰기 좋습니다.
흔한 오해
"마감을 앞당기기만 하면 된다." 날짜만 앞당기고 내가 그걸 '가짜'라고 알고 있으면 쉽게 무시됩니다. 비신·하인드먼의 실험에서도 스스로 정한 마감이 완료율을 높이지 못했습니다. 날짜보다 단계와 시간 블록을 함께 정하는 게 낫습니다.
"마감 직전의 집중이 내 스타일이다." 마감 직전 몰입은 실제로 일어나지만, 계획 오류 연구가 보여 주듯 일정은 대개 예상보다 길어집니다. 몰입을 믿는 것과 일정을 낙관하는 건 다른 문제입니다.
마감에 끌려다니는 패턴은 결국 지금 당장의 편안함이 먼 보상을 이기는 구조와 닮아 있습니다. 이 부분은 게임은 몇 시간, 공부는 10분에서 보상의 즉시성으로 설명해 두었습니다.
자주 묻는 질문
철회된 연구라면 '스스로 마감 정하기'는 효과가 없다는 뜻인가요?
그렇게까지 말할 수는 없습니다. 철회된 건 특정 논문의 데이터이고, 남은 연구들은 '효과가 생각보다 약하고, 정하는 방식이 중요하다' 정도로 읽는 게 정확합니다.
마감은 얼마나 짧게 잡아야 하나요?
정해진 정답을 뒷받침하는 연구는 찾지 못했습니다. 다만 한 단계가 하루 안에 끝나는 크기로 쪼개고, 과거 실제 소요 시간을 기준으로 삼는 게 계획 오류를 줄이는 방법으로 제시됩니다.
참고 자료
- Procrastination study by Duke's Dan Ariely retracted after sleuths find signs of data tampering (Retraction Watch) — 애리얼리·베르텐브로흐(2002) 논문의 철회 경위와 재현 연구, 데이터 분석 내용을 정리한 연구윤리 전문 매체의 기사입니다.
- Present-Bias, Procrastination and Deadlines in a Field Experiment (NBER) — 학생들이 스스로 이른 마감을 원하지만 마감을 최적으로 정하지는 못한다는 비신·하인드먼의 현장 실험 논문입니다.
- The Planning Fallacy (SPSP) — 계획 오류의 원인과 과거 기록 비교, 단계 쪼개기, 구체적 실행 계획 등 대처법을 설명한 학회 블로그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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